Mercedes Sosa
Haydée Mercedes Sosa (9 July 1935 – 4 October 2009)
Latin America and many countries outside the continent. With her roots in Argentine folk music,
Sosa became one of the preeminent exponents of nueva canción.
<Wikipedia>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고난받는 이들의 어머니'라 불러도 나무랄 사람이 없다. 인디오의 피가 왜 뜨거운지 이 여인을 보면 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인생은 한마디로 거룩하다.
혹독한 군부독재를 경험했던 전 세계 민중들에게 양심과 정의 그리고 희망의 상징이었던 소사는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뚜꾸만의 산 미구엘에서 태어났다.
소사가 나고 자란 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불행한 나라로 기억되고 있다.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1982년 12월 민주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근 170년 간 잦은 군사쿠데타로 몸살을 앓아온 나라였다. 국민의 10%가 인디오이고 나머지는 유럽계 백인이다. 인디오들은 16세기의 스페인 침략을 겪으면서 이후 백인 농장주들의 착취와 그들을 지원하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정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그리고 후안 페론이 사망한 뒤 1976년 초 군사쿠데타를 거쳐 정권이 비델라 군부로 넘어가면서 여느 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포정치가 시작됐다. 나라 전체가 탄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민중의 삶과 꿈은 절망의 다른 표현이었다. 1977년부터 군사독재가 종식되는 1983년까지 군부의 인권탄압으로 3만여 명의 민중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기도 했다. 역사는 이것을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렀다.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정치상황은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반독재와 저항의 노래들이 그 역사를 아프게 이어갔다. 이때 메르세데스 소사는 좌절 속에서 희망의 노래를 길어 올렸다. 아르헨티나 민중들에게, 더 나아가 똑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에게 어두운 시대를 이겨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소사의 노래는 정직했고, 신념이 있었다. 군부에 맞선 그녀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소사의 노래는 라디오나 TV에서 방송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중들의 사랑은 군부독재가 휘두른 칼날 위에서도 뜨겁기만 했다. 소사에게는 늘 비밀경찰이 따라붙었고, 자신이 언제 어떻게 실종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민중의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고 독재와 폭력에 저항하는 노래,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래, 반전평화 등의 노래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존 바에즈, 밥 딜런 등 세계 정상급 뮤지션들과 함께 반전평화 콘서트를 열었고, 국제사면위원회 콘서트에 참여하여 정의와 인권을 노래했다.
소사는 믿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세상사의 표면도, 그 내면도,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 내가 변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 노래 '모든 것은 변하네'(Todo Cambia)에서
소사의 노래에는 '언어'의 벽이 없다. 번역이 무의미했다. 그녀의 노래는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 있었다. 목소리로 언어를 녹였고, 심금을 울리는 서정을 표현했다. 민중의 영혼을 일깨우는 목소리만으로 노랫말에 담긴 정서를 남김없이 전달할 줄 아는 소리꾼이었다. 세계인이 사랑하고 감동했던 이유다.
소사의 노래를 들어 보라. 때로는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고,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주며, 때로는 우렁찬 울림으로 청중들에게 신념을 전달하던 노래.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하다가도 불의에 대한 거센 분노를 담는가 하면, 처연히 솟아나는 이웃들의 슬픔에 낮게 엎드려 다가간 노래. 한 영혼이 흐느끼는 찬란한 슬픔과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칠흑 같이 검은 머리카락, 께추아족 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인디오의 얼굴, 그리고 전통의상을 입은 소박한 모습으로 세계 곳곳의 무대에 설 때마다 소사에게 쏟아졌던 청중들의 기립박수. 그것은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온 여인에게 바치는 무한한 존경과 애정의 표시였다.
군사정권 아래서 체포와 석방을 되풀이하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1979년 1월, 아르헨티나에서 영구 추방됐다. 그녀가 치른 망명 생활은 고독과 아픔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소사는 좌절하지 않았다. 록과 재즈 등 꾸준히 새로운 음악을 실험했다. 하지만 음악인생의 모태가 되었던 안데스 음악을 저버리지 않았다. '포크로리카'(Folklorica)는 그녀에게 영혼과 같은 존재였다. 1960년대 초 소사가 참여한 누에보 깐시오네르 아르헨티노(Nuevo Cancionero Argentino, 아르헨티나의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정신을 잇는 것이며, 조국의 암울한 현실과 민중의 고통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게 된 음악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1982년, 마침내 소사는 망명 생활을 끝내고 모든 위험을 감수한 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정권은 무너졌다. 귀국 후 한 오페라 극장에서 가진 공연은 그야말로 감동의 무대였다. 꼭 기억해야 할 노래가 있다. 비올레따 빠라의 원곡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노래, 홀을 가득 메운 극장 안에서 군부독재 시대 억눌려 살아왔던 민중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소사가 불렀던 노래, 바로 풍부한 서정과 큰 울림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킨 명곡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이다. (노래영상 참조)
소사는 말한다.
"나는 전 세계 민중을 위해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니까요. 노래는 변합니다. 투쟁과 단결의 노래도 있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호소하는 것도 있습니다. 저가 1982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대 위에서 국민들에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것이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라틴 아메리카에 산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메르세데스 소사를 가리켜 '누에바 깐시온의 거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70년대부터 소사는 비올레따 빠라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 아따우알빠 유빵끼의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Guitara di melo tu), 아리엘 라미레스의 '모든 것은 변하네'(Todo Cambia), '알폰씨나와 바다'(Alfonsina y el Mar), 빅토르 에레디아의 '살아가는 이유'(Razon de vivir),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유니콘'(Unicornio), 레온 히에꼬의 '단지 하느님에게 바라는 것은'(Solo le pido a Dios) 등 불후의 누에바 깐시온 노래들을 완벽하게 해석하여 세상에 전파했다.
또한 소사는 1986년, 아리엘 라미레즈가 작곡한 인디오 미사곡 '미사 끄리오야'(Misa Criolla) 명반에 수록된 노래를 불러 흠잡을 데 없는 예술의 완성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섯 개로 구성된 미사곡의 선율만으로도 안데스 민속음악과 카톨릭 종교음악의 혼을 느낄 수 있지만, 인디오 영혼을 달래주는 그녀의 절창에는 가슴 저미는 애달픔이 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Kyrie)가 특히 그렇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모든 노래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심장을 녹이는 뜨거움이 있다. 서정이 넘치는 풍부한 표현력, 고난의 연대를 헤쳐 온 파란만장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단아한 목소리, 한시도 떠나지 않는 인디오의 애환, 강렬하고 우직한 힘, 바로 소사의 음악이다.
소사는 50년 이상을 자신이 믿는 신념에 따라 노래했다. 인디오의 민속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린 월드뮤직의 거장, 누에바 깐시온의 최고 해석자, 고난받는 이들을 노래로 달래준 어머니의 존재, 그녀에 대한 화려한 수사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소사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인간과 사회,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믿음이 그녀의 음악세계를 낳은 것이라고.
아르헨티나의 고통스런 현대사를 민중과 부대끼며 영혼의 목소리로 세상의 분노와 슬픔을 어루만져 주던 작은 거인.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이 민중의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해와 성찰을 품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굴렁쇠
http://blog.ohmynews.com/rufdml/tag/%EB%AF%BC%EC%A4%91%EA%B0%80%EC%88%98
Gracias A La Vida (삶에 대한 감사)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alto cielo su fondo estellado
y en las multitudes al hombre que yo am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cielo que en todo
su ancho graba noche y dia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e de mi bien amad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밤과 낮에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를 들려주고,
망치소리, 터빈소리, 개짖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녹음해 넣을 수 있는 넓은 귀도 주었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cedario con 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vita del alma del que estoy amand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언어와 소리와 알파벳을 선사하고,
어머니와 친구와 형제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의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도 주었고요.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s cansados con ellos auduve ciudades y charcos,
playa y desertos, montanas y llanos y la casatuya, tu calle y tu pati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피곤한 발로 진군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시와 늪지, 해변과 사막,
산과 평야, 당신의 집과 거리, 그리고 당신의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el corazon que agita su mano q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umano quando
miro el bueno tan lejos del malo quando miro el fondo de tus ojos claros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때
악에서 멀리 떠난 선함을 볼 때
그리고 당신의 맑은 눈의 깊은 곳을 응시할 때
삶은 내게 그 틀을 뒤흔드는 마음을 선사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
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rio
cant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웃음과 눈물은 주어 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슬픔과 행복은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를 이루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노래입니다,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아침정원 > Christian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Shout To The Lord / Darlene Zschech (0) | 2013.11.21 |
---|---|
Bring Him Home, from Les Misérables - Alfie Boe and the Mormon Tabernacle Choir (0) | 2013.09.28 |
주기도문(The Lord's Prayer) / Andrea Bocelli with the Mormon Tabernacle Choir (0) | 2013.08.10 |
부드럽고 자상하게(Softly And Tenderly) / Alan Jackson (0) | 2013.08.04 |
Ten Thousand Reasons (Bless the Lord) / Matt Redman (0) | 2013.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