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은 ‘섬 시인’이다. 1929년 서산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외딴 섬을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섬이라면 유인도, 무인도 가리지 않고 찾다 보니 그의 발길이 닿은 섬이 천 곳이 넘는다. 특히 젊은 날 군대생활을 하였던 모슬포뿐만이 아니라, 성산포, 서귀포, 우도, 다랑쉬오름 등, 제주 어느 한 곳 그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 곳의 풍광을 사랑하여 곳곳을 걷고 또 걸어 다녔다. 그런 까닭에 올레길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제주 걷기 일주를 두 차례 하였으며, 지금도 틈만 나면 스케치북을 들고 제주를 비롯한 우리나라 여러 섬들을 찾아가 직접 그 곳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시를 쓰며 지낸다. 1955년부터 시집을 펴내기 시작해《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후 지금까지 33권의 시집과 여러 권의 수필집을 펴냈으며, 우리나라 섬의 정경과 섬사람들의 뿌리 깊은 애환을 담은 시를 주로 써오고 있다. 특히 1978년에 처음 펴낸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수십 년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문학상,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尙火시인상을 수상했다. 2001년 제주자치도 명예도민이 되었고, 2009년 성산포 오정개 해안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공원이 만들어졌으며, 2012년 신안 명예군민이 된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섬에서 돌아오면 지금도 인사동에서 섬을 중심으로 시낭송과 담론을 계속하고 있다. 시집으로《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비롯하여《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황진이에 관한 시집 《그 사람 내게로 오네》, 그리고《김삿갓, 시인아 바람아》,《반 고흐, ‘너도 미쳐라’》,《우이도에 가야지》,《골뱅이@ 이야기》,《실미도, 꿩 우는 소리》등, 다수의 시집이 있다. [옮김]
이생진 첫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
정의: 1978년에 발간된 이생진 시인의 시집.
개설: 이생진 시인이 성산포 일대를 배경으로 삼아 쓴 시만을 모아 펴낸 시집이다.
바다와 섬과 고독 등을 노래한 책으로, 충남 출신인 이생진 시인은 이 시집으로 인해 제주도 명예도민이 되었다.
구성: 머리말/「바다를 본다」·「술에 취한 바다」 등 81편의 시/후기
내용: 81편의 시는 모두 1부터 81까지의 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 가운데 1~24는 1975년에 쓴 것이고, 25~81은 1978년 작품으로, 『현대문학』·『시문학』·『월간문학』과 시동인집 『다섯 사람의 분수』에 나뉘어 발표되었던 것이다. 전편을 흐르는 정서는 고독과 그리움이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라는 시구를 담은 「술에 취한 바다」라는 작품이 특히 유명하다.
특징: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임을 아름다운 제주도의 성산포 바다를 제재로 삼아 슬픈 어조로 형상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 성산포 일대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는 않았으면서도, 많은 독자들에게 성산포 바다를 찾아가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도록 만든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http://seogwipo.grandculture.net/Contents?local=seogwipo&dataType=01&contents_id=GC04601966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바다를 본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눞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에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나타난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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