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중앙 2016년 겨울호(통권147호)의 특집은 ‘#여성혐오_창작’이다. 지난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관한 문제는 문학 내에서도 뜨거운 이슈였다. 문예중앙은 문학의 언어와 형식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이성미· 송승언 · 유진목 시인, 김성중 · 양선형 · 천희란 소설가가 ‘여성혐오’와 ‘문단 내 성폭력’ 이슈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문학의 형식으로써 풀어놓았다.
김정환 시인의 장시「소리 책력」이 이번호로 끝을 맺었다. 일 년 동안 연재되었던「소리 책력」을 다시 읽고 깊이 이야기해보기 위해 김정환 시인과 함께 강정, 함성호 시인이 인터뷰를 해주었다. 지금-여기의 현실을 감당해내기 위해 구축해나가는 김정환 시인의 새 문법에 대해, 그 ‘슬픔의 문법’에 대해 일독을 권한다.
2016년 겨울호 창작 부문에는, 단편소설에 김덕희, 정영수 작가, 장편소설에 김솔 작가, 시에 문정희, 정한아, 김승일, 권기덕, 유계영, 최지인 시인이 문예중앙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특히 문정희 시인의「곡시(哭詩)」는 ‘여성혐오’라는 특집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1896~1951)이 당대 남성 문인들로부터 당했던 “비명과 피눈물”을 눈물로써 쓴 진혼가이다. 그리고 그동안 신문, 고서, 광고 등의 다양하고 귀한 자료로써 ‘읽는 먹방’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준 ‘문학으로 음식읽기’가 이번 호로 연재를 마무리했다.
2016년 겨울호를 펴내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문단, 학교, 선생은 아니지만, 문학은 될 수 있다.”
이 문장은 지난 11월 B시인의 성폭력 혐의 고발자들(트위터 계정 ‘고발자5’)과 연대하는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들의 선언문 중 일부입니다. 그들의 “우리가 문학은 될 수 있다”라는 선언은 같은 11월 광화문 광장에서 울려 퍼진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구호처럼 긴 여운을 남깁니다. 문학에도 헌법이 있다면 이는 제1조 2항에 해당할 것입니다. 문학이란, 시인과 소설가란, 특정한 누군가에게 부여되는 라이선스가 아니라 그것을 쓰고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참담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문단이 그렇습니다. 최근 SNS에서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타고 문인들의 성희롱 추문들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문단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고, ‘자괴감’이란 감정이 피해자의 가슴 깊숙이 들어앉았으며, 지금-여기의 현실에는 초라하고 앞으로도 초라할 삶과 개인들이 하나둘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극적 현실의 한가운데에 ‘학생’들이 있습니다. 미성년자이며 문학을 배우는 습작생들이 그들의 선생과 기성 문인과 한국 문단에 분노했습니다.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 폭로된 증언들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기성 문인’과 ‘선생’이라는 권위로부터 무자비한 폭력을 당한 것이고, 침묵하는 또 다른 기성 문인들과 문단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지난 11월 11일,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한목소리를 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기성 문인들의 침묵에 ‘가만히’ 있지 않은 것입니다. #문단_내_성폭력 고발자 ‘고발자5’에 대한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의 이름은 ‘탈선’입니다. 그들은 기성 문인들의 문학에서 ‘탈선’하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선생이 ‘윤리적 탈선’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 ‘문학의 틀’을 깨고 더 문학적으로, 더 문학적인 방법으로 ‘탈선’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크기가 협소하고 모양이 추악”하기만 한 선생의 문학적 상상력을 비웃는 것이며, 자성 없고 비겁한 문단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내 “우리는 문학이자 산증인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증명”하겠다고 합니다. 때문에, 문단과 침묵하는 문인들은, “우리가 문학은 될 수 있다”는 그들의 선언에 ‘마땅히’ 지지와 용기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읽는 문학에 대해 다시금 곰곰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들의 선언에 어떻게든 응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문학의 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이번 호 특집 ‘#여성혐오_창작’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문단_내_성폭력’ 이슈가 폭로되기 이전에 기획된 것입니다. ‘여성혐오’에 관한 문학 내의 문제는 문학의 언어와 형식으로 풀어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르포나 짧은 소설 등의 창작 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참혹한 폭로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후 상황을 목격하고 감내해야 했을 필자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 글들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행보에 대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김정환 시인의 장시 연재가 이번 호로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연재되었던 「소리 책력」을 다시 읽고 깊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강정, 함성호 시인이 함께해주셨습니다. 김정환 시인이 지금-여기의 현실을 감당해내기 위해 구축해나가는 새 문법에 대해, 그 ‘슬픔의 문법’에 대해 일독을 권합니다.
문예중앙에 매 계절 발표되는 시와 소설의 창작 작품들은 언제나 그렇듯 문예중앙 존재의 가장 큰 목적과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편에 김덕희, 정영수 작가, 장편에 김솔 작가, 시에 문정희, 정한아, 김승일, 권기덕, 유계영, 최지인 시인이 함께하여 문예중앙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문정희 시인의 「곡시(哭詩)」는 ‘여성혐오’라는 특집 주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1896~1951)이 당대 남성 문인들로부터 당했던 “비명과 피눈물”을 눈물로써 쓴 진혼가입니다.
그리고 ‘문학으로 음식읽기’가 이번 호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신문, 고서, 광고 등의 다양하고 귀한 자료로써 ‘읽는 먹방’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주신 고영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음은 벌써 2017년에 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더 많은 것들이 벌써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변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http://jbooks.joins.com/moonye/book_info.asp?bokid=94&ctg=M10
http://blog.naver.com/sixsixsix666/220890754243 ← 문정희 시인의 「곡시(哭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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