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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MASADA)/이스라엘 남동부에 있는 고대의 산상 요새 - July 5, 2014

엔비53 2014. 7. 26. 17:30

 

 

 

 

MASADA (Modern Hebrew מצדה metzadá "fortress")

 

General Information: 

The Northern Palace Complex. Herod constructed the most important buildings in the northern part of Masada - the highest point of the rock ("acropokis"). The Northern Palace was serviced by public storerooms, administrative buildings, and large bathhouse.

 

The main entrance to the Northern Palace complex was through its south part, near Building No. VIII, which seemingly served as the "commandant's residence." The excavations of Netzer and Stiebel revealed the varied features of the main entrance, the dominant building of which is a large hall that occupies the eastern part of the courtyard. It was originally decorated with stucco reliefs and apparently served as a reception hall for Masada's visitors. Together with the "commandant's headquarters", west of the courtyard, this hall formed a lavish entrance, that made it possible to monitor the incoming goods and visitors.

 

Northern Palace. Josephus gives a detailed account of a royal palace situated beneath the walls of the fortress. This palace enjoyed improved climate conditions and commanded a magnificent view of the surroundings as far as En Gedi. It was built in three tiers, the upper containing the living quarters whereas the lower ones were designed for pleasure. Frescoes on the lower part of the walls were painted to imitate stone and marble paneling.

 

Bathhouse. South of the northern Palace was a large bath-house with four rooms, except the last, were decorated by mosaic floors which were later replaced by pink and black triangular tiles (opus sectile), while the walls were decorated by frescoes. The largest room, the hot room, was heated through a hypocaust  system beneath it and its floor and the double walls that were furnished with clay pipes. Hot water flowed into a bathtub and quartz fountain set in the room's niches.

 

The bathhouse was used by the rebels and a charcoal graffiti of the Legio X Fretensis indicates the presence of the conquering Roman soldiers.

 

Water System. one of the most impressive engineering projects at Masada is the water system Herod constructed to ensure an adequate supply of water.  The system included dams that diverted floodwater of the two wadis, west of Masada, into two plastered channels that fed a dozen large cisterns. The cisterns were hewn on two parallel levels into the rocky slope. Each cistern had a capacity of up to 140,000 cu. ft. (1 million gallons) and together could hold about 1,400,000 cu. ft. (10.5 million gallons). The cisterns are mostly square in shape and have tow openings, one leading from the aqueduct and a second, higher one connected with an inner staircase for drawing out water. Pack animals then bore the water up to the cisterns on the mountain top. The pass leading from the upper level of the cisterns ended in a gate just south of the Northern Palace ("water gate"). Another pass led from the lower level to the "snake pass."

 

* [위키백과 복사] 마사다에 관해 한국말로 맨 밑에 실려있음.

 

 

보통 사인판에는 히브르어, 아랍어 그리고 영어 순으로 쓰여있는데 여긴 아랍어가 없다.

여기는 아랍사람들이 안 오든지 아니면 여기 오는 아랍사람들은 히브리어 and/or 영어를 다 아는지...^^

 

Our tour bus.

 

- Path to the Summit - 

Ascending Masada by the Western entrance.

There are three ways to reach the summit. If you don't want to walk,

then the cable car is your best option.

 

 

난 거북이처럼.....

학생들은 Nubian Ibex(desert goat)처럼 뛰어올라갔기에 보이지도 않는다. 휴~

 

마사다에서 북쪽 건너편을 바라본 경치이고 바로 밑은 아찔하게 보이는 계곡이다.

 

 

 

 

 

Overlooking the Dead Sea.

 

One of the Roman camps outlined in the sand.

 

Model of King Herod's palace complex atop Masada.

 

 

 

 

 

 

 

 

 This black bird with some distinctive orange feathers is known as

Tristram’s Grackle, or Tristram’s Starling.

 

마사다와 사해 부근에서 서식하는 잘 알려진 새인데 마침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어서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Synagogue on Masada.

 

Remains of the North Palace Storehouses.

 

Church dating from when Byzantine monks lived here (5th century).

'Watch Tower'

 

 

 

Original Wall painting in the bath complex.

 

Remains of the thermal bath at Masada, with murals still intact.

 

 

한 고등학생이 온탕에서 씻고 나온듯한 행동으로 웃게했다.

 

 

 

Bath house hypocaust (an ancient Roman system of under floor heating) at Masada.

 

An inside view of the furnace of the under floor heating system in the Masada bathhouse.

 

 A dark line in the stones of Masada show where the ruins have been reconstructed.

Original Masada structure below the line; reconstructed ruins above.

 

 

 

1. There is a spot on Masada opposite a canyon that provides a great spot for making an echo. 

 

2. one of the Roman camps outlined in the sand.

 

 

 

Model for the rain water collecting system of Masada.

 

아찔해서 사진 찍기도 무서웠다.

하늘색고 똑 같아서 구분하기 어려우나 사해(Dead Sea)가 보인다.

Dead Sea blends in with the sky in the distance.

 

 

 

Israel Aereal Ropeway Masada BW 1.JPG

서쪽 길을 따라 올라갈 때 고생을 해서 동쪽으로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걸어서 내려온 사람들 말이 해가 정면에서 비치고 부실부실한 흙이 미끄러워 고생했다고 한다.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내려다보는 사해(Dead Sea)와 winding 'Snake Path'.

 

 

 

 

마사다(히브리어 מצדה, , 요새라는 뜻)는 이스라엘 남쪽, 유대사막 동쪽에 우뚝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를 말한다.

73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끝까지 로마군에 항거하던 유대인 저항군이 로마군의 공격에 패배가 임박하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전원 자살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에 하나이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역사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마사다는 기원전 37년부터 31년 사이에 헤로데 대왕이 악정으로 인해 자기에 대항한 반란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피난 요세이자 왕궁으로 세웠다고 한다. 수천 명이 몇 년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 분량의 식량을 쌓을 수 있는 식량창고도 만들었다. 66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발발하다 일단의 유대인 저항군이 주둔하고 있던 로마수비대를 몰아내고 이 요새를 차지했으며 당시의 지도자는 에리아자르 벤 야이르였다고 한다.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다른 유대인들과 그 가족이 마사다로 피난해서 합류했으며 2년 동안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로마군과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은 다른 유대인을 공격했다.

72년 플라비우스 실바장군이 이끄는 로마 제10군단이 마사다로 진격했다. 여러차례 요새를 공격했으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고 이에 로마군은 서쪽의 고원과 같은 높이의 거대한 성채를 쌓아올려 공성을 준비했다. 요세푸스는 그가 기록한 다른 전투와는 달리 이 전투에서 유대 저항군의 반격을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마사다의 저항군이 로마군에 대항할 전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역사학자들은 로마군이 성채를 쌓을때 같은 열심당유대인 노예를 이용했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이 다분한 열심당원이 차마 동족을 죽일 수 없었다고 보고 있다.

73년 드디어 공성을 위한 성채가 마련되자 로마군은 공성기를 이용해 성벽일부를 깨뜨리고 요새로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식량창고를 제외한 요새안의 모든 건물이 방화로 불에 탔고 엄청난 수의 자살한 시체들만 즐비했다. 유대인 율법은 유대인의 자살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기에 유대인들은 제비를 뽑아 서로를 죽였으며 최후에 2인이 남자 한 명이 죽이고 남은 한 명은 자살했다고 한다. 다른 건물을 모두 불에 태우면서도 식량창고만은 남긴 것은 최후까지 자신들이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자살한 것이지 식량이 없거나 죽을 수밖에 없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마사다에서 살아남은 것은 여자 두 명과 다섯 명의 아이들뿐이며 로마군은 그 무서운 자살 광경에 겁을 먹고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마사다

마사다는 1842년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발굴되었다. 거의 2,000년 동안 이 요새가 사람의 손에 닿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이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난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관광객의 트래핑을 위한 샛길이 나 있으며 따로 케이블카도 설치되었다. 헤로데 대왕의 두 개의 궁전과 빗물을 저장했던 거대한 수조, 로마식 목욕탕과 유대 반란군의 막사, 창고 등이 발굴되어 복원 되어있고 로마군이 요새를 둘러서 쌓았던 성채와 그 외곽에 로마군 막사의 유적도 발굴되어 있다.

이스라엘 국방군 장관이었던 모세 다이안은 이곳의 고대 신화를 이스라엘 국방군의 상징으로 보고 신병훈련을 마사다에서 끝마치게 했다. 부대에서 이곳까지 명예스러운 행진을 하며 밤에 이곳을 올라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게 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는 의식을 한다.

 

2001년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위키백과 복사]

 

 

Summer Rain / Ralf B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