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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행기...(함동선)

엔비53 2017. 4. 18. 21:26

                                  여행기(旅行記)
                                                          함동선
                                           고향에 가면 말야
                                           이 길로 고향에 가면 말야
                                           어릴 때 문지방에서 키 재던 눈금이
                                           지금쯤은 빨랫줄처럼 늘어져
                                           바지랑대로 받친 걸 볼 수 있겠지
                                           근데 난 오늘
                                           달리는 기차에서
                                           허리 굽히며
                                           다가 오는 옥수수 이삭을
                                           바라보며
                                           어린 날의 풀벌레를 날려 보내며
                                           부산에 가고 있는데
                                           손바닥에 그린
                                           고향의 논둑길은 땀에 지워지고
                                           참외 따 먹던
                                           혹부리 영감네
                                           원두막이 언뜻 사라지면서
                                           바다의 소금기 먹은 짠 햇볕만이
                                           마치 부서진
                                           유리조각을 밟고 오는데
                                           아리어 오는 눈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한 줄기
                                           차창에 부우연
                                           내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 얼굴 위로
                                           어머니 얼굴이 겹쳐 오는데
                                           그 어머니의 얼굴에서
                                           빗방울이 흘러내리는데
 
출처 : 샘이 있는 언덕...
글쓴이 : 굴뚝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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