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의 도량 화순 운주사 (1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소속으로 있는 운주사(雲住寺)는 천개의 석불과
천개의 탑이 있었다는 역사를 가진 신비의 사찰이다.
이 절의 창건 설화도 천불천탑(千佛千塔)만큼 다양하다.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 다양하다.
이 중 도선국사의 창건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도선국사의 창건설화에 의하면,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따라
천불 천탑을 세워 비보 진압(裨補鎭壓)을 하여 국운(國運)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하고자 하룻밤 사이에 천불 천탑을 도력(道力)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운주사 창건 주체도 신라 말 능주 호족 세력(豪族勢力)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고,
능주 지방에 이주해 온 외부 세력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미륵 사상(彌勒思想)을 믿는 노비들이 미륵 공동체(彌勒共同體)를 건설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설과
도교 사원(道敎寺院)이라는 설 등도 구구하다.
(일주문)
운주사의 사명(寺名)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운주사(雲住寺)’로,
1737년에 작성된 「일봉암기(日封庵記)」와 1907년에 쓴 「개천사 중수 상량문(開天寺重修上樑文)」에는
‘운주사(運舟寺)’로 기록되는 등 혼용되었다.
그러나 1984년 발굴 조사에서 ‘운주사(雲住寺)’라는
고려 시대 기와편이 발굴됨에 따라 ‘운주사(雲住寺)’가 원래 명칭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일주문 뒤 편액)
운주사는 발굴 조사에서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해무리굽 청자 조각이 출토되어 늦어도 11세기 초반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1656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지 東國輿地志〉에 고려승 혜명(惠明)이
무리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혜명을 970년(광종 21)에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혜명(慧明)과 동일한 인물로 본다면
운주사는 고려초에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절의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 절로서 천불천탑과 석불 2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조감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발굴 조사에 의하면 창건 이후 운주사는 세 차례 중창이 있었는데,
첫 번째 중창은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반이며, 2차 중창은 12세기,
3차 중창은 12세기 후반 내지 13세기 초반에 완성되었다.
그 상층(上層)에서 “홍치 8년(弘治八年)”이라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석탑과 불상 등이 조성된 것은 3차 중창 시기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상층에서 발굴된 명문 기와로 보아 운주사는 1495년(홍치 8, 성종 26)에 다시 중창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운주사가 있어 조선 전기까지는 사세(寺勢)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종 때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정유재란 때 폐사된 이후
사찰의 중심지가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서 도암면 대초리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초리 사지는 17세기 이후로 파악되는 2동의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설담자우(雪潭自優)의 「운주동 불탑 수리 후 중건약사전 권선문(雲住洞佛塔修理後重建藥師殿勸善文)」에 의하면
19세기 초반 훼손된 불상과 무너진 불탑을 중수하고
새로이 약사전을 중건하였고 이를 약사사(藥師寺)로 기록하고 있다.
한동안 다시 폐사되었던지 1921년에 간행된 『도암 면지(道岩面誌)』에 의하면,
1918년에 전 군수(前郡守) 박윤동(朴潤東) 등 16명이 시주하여 재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2년~1978년 비구니 승려의 중건으로 대웅전과 요사를 건립하였고,
근래에 송광사의 말사로 편입되면서 대대적 중창 불사가 이루어져
많은 전각을 건립하고 주변을 정비하고 있다.
운주사는 비구니사찰로 사찰 내에는 대웅전·지장전·미륵전·산신각·
보제루·종루·운주 선원·일주문·사천왕문·원융당·지혜당·공양간 등 16동의 전각이 산재해 있고
계곡 깊숙한 곳에 암자 목우암이 자리하고 있다.
운주사는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는 석탑 21기와 불상 97구가 남아 있고 사찰 일원은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3년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화순 운주사 구층 석탑[보물 제796호],
화순 운주사 석조 불감[보물 제797호],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보물 제798호],
화순 운주사 와형 석조 여래불[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3호],
화순 운주사 광배 석불 좌상[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4호],
화순 운주사 마애 여래 좌상[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5호],
화순 운주사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6호]
화순 운주사 쌍교차문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7호],
화순 운주사 석조 불감 앞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8호],
화순 운주사 거북 바위 교차문 칠층 석탑,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80호 화순 운주사 대웅전 앞 다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9호],
화순 운주사 칠성 바위 앞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81호],
화순 운주사 발형 다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82호],
화순 운주사 거북 바위 오층 석탑[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56호],
화순 운주사 수직문 칠층 석탑[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57호] 등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보제루(종무소)
대웅전에는 석가여래 독존상이 모셔져 있고 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
지장보살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모셨다.
산신각
미륵전
미륵전에는 석불상을 모셨다.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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