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가 15일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 열린 드림시티
다문화공동체 창립 2주년 기념 후원의 밤에서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이해인 수녀는 ‘행복의 얼굴’이라는 시를 읊기 시작했다. 회색 수녀복에 하얀 카디건 차림. 2008년 대장암에 걸린 뒤 투병생활을 계속하는 중이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제가 가장 아플 때 쓴 시를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많이 읽더라고요. 인생은 가시밭길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감사를 외치면 그 길을 꽃길로 만들 수 있어요.”
참석자 100여 명은 수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눈을 반짝이면서. 이들은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근로자,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 드림시티 다문화공동체가 15일 오후 7시 부산 서구 동아대 부민캠퍼스의 국제관 지하식당에서 주최한 ‘창립 2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에서였다.
이해인 수녀는 1970년부터 1975년까지 필리핀에서 공부했다. 자신 역시 이주여성이었던 셈이다.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해 준다. 행사에 오게 된 이유 역시 외국인에게 관심이 많고, 이들의 노래를 들어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와서 섭섭한 일을 당했으면 대신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고 힘들 때 이 시를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떤 결심’이라는 시입니다.”
다른 시 하나를 더 읽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남의 탓을 안 하기로….”
수녀는 다른 시 하나를 다 같이 낭송하자고 제안했다. 제목은 ‘나를 위로하는 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읽어 보자는 제안이다. 모두가 소리를 냈다.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낭송이 끝나자 수녀는 하얀 봉투를 꺼내 박우순 드림시티 대표이사에게 건넸다. “수녀원에서 휴가비를 조금 주는데, 남는 돈을 후원금으로 보태고 싶어요. 우리가 매일 힘들지만 계속 감사를 발견해 감사하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해인 수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행사를 주최한 드림시티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소통을 돕기 위해 생긴 단체. 지난해엔 외국인이 한국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언어와 기초 지식을 알려주는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법무부가 지정했다.
드림시티는 단 한 사람의 외국인이라도 한국 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교류하고 소통하도록 도우려고 한다. 박우순 대표이사는 “이주민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함께 서로의 꿈을 이뤄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행사 마지막엔 드림시티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합창단은 10여 명이다. 한국 일본 태국 베트남 러시아 페루 등 국적이 다양하다. 피아노 반주자는 인도네시아 출신 유학생 요시야 씨(22). 이들이 부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손을 잡으면 마음이 전해져요. 손을 잡으면 사랑이 느껴져요. 보들보들 아기의 손, 장난치는 친구의 손, 일하시는 아빠의 손, 부드러운 엄마의 손, 마주잡은 두 손 사이로 사랑이 오고가고 두 손 사이로 웃음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얼굴은 이해인 수녀가 읊었던 시 제목처럼 행복했다. 국적도, 나이도, 자라온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부산=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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