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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청사우(乍晴乍雨)-김시습(金時習), 클레멘타인 / 길은정

엔비53 2013. 1. 26. 20:34

 

 

 

 

 

 

사청사우(乍晴乍雨)-김시습(金時習)
개었다가 다시 또 비 내리네-김시습 (;1435-1493)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 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예아편시환훼아) :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불쟁) :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 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감상1-(오세주)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이 생산한 산물을 먹고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 속으로 간다. 이런 면에서 인간과 자연은 하나다. 아니, 자연은 부모요 인간은 자식이다.
뿐만 아니라 자연은 인간에게 정신적 가치의 영감(靈感)까지 제공한다. 도잠은 四時에서 冬嶺秀孤松이라고 노래한다. 즉, 추운 겨울 고개에 홀로 남은 소나무는 그 기상이 더욱 뛰어나 보인다는 것이다.
진정 바르고 가치있는 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과 위협도 감수하고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력과 일관성을 겨울 추위에 홀로 남아 푸른빛을 잃지 않은 소나무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가 건전하려면 지조를 지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지조를 잃어버린 사람과 그들이 구성하는 사회의 말로는 혼란과 멸망이 있을 뿐이다.
이 시의 작가 김시습은 지조를 지킨 삶을 산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소위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다. 김시습은 그의 나이 20세 전후에 패륜을 목격한 것이다. 삼촌인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사건을 말이다. 물론 이 사건을 두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론으로 다른 각도의 설명과 해설을 붙여 정치적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만이 당시의 유일한 대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반 인륜이고 패륜임이 분명한 것이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이 어린 김시습으로 하여금 자신의 출세만을 위한 정상적 삶을 불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당시 신동으로 알려졌을 뿐아니라 과거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세조의 왕위 찬찰의 소식을 듣고 바로 과거준비를 중지하고 출가 하여, 전국을 떠도는 삶을 산 것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이러한 김시습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즉 당시의 정치와 인간성에 대한 불신과 냉소의 정서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1,2 구절은 이러한 패륜을 목격하고 가치관의 혼란에 빠진 김시습의 떠도는 삶의 현장이다.
무대는 산이다. 산길을 걷는 도중일 수도 있고, 어느 절이나 암자일 수도 있디.
날씨는 비가 내렸다 그쳤다하는 변덕스런 날씨다. 바로 이것이다. 김시습이 이 시를 짓게한 것은 이 날씨의 변덕인 것이다. 그는 이것을 이시의 첫구절로 삼고, 제목으로도 삼았다.
즉,
乍晴乍雨雨還晴(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인간이 변하지 않는 진리로 크게 믿는 천도, 즉 자연의 법칙까지도 변덕 스럽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3,4구절에서,그는 자신이 격은 변덕스런 사람들의 인심을 예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즉,
譽我便是還毁我(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으니)
逃名却自爲求名(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지조와 원칙응 내세우던 사람들도 입장이 바뀌거나 이해관계가 달라지게 되면, 자신을 칭찬하던 사람이 더 심하게 욕을 하게 되고, 명예를 마다하던 사람이 도리어 명예를 탐하는 변덕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5,6구에서는 대자연의 질서는 변치 않음을 보여준다.
즉,
花開花謝春何管(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雲去雲來山不爭(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꽃이 피고 지게 하는 대자연의 시간 운영과 구름을 오가게 하는 자연의 섭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람과 구름, 산과 꽃은 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지막 7,8구에서
작가는 변덕스런 인간세게의 법칙과 큰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자연스런 자연 세계를 대조시키며, 우리가 어느 세계의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하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즉,
寄語世人須記認(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여기서도 그는 인간의 세계는 이해괸게가 지배하는 변덕스런 곳이며, 이해괸게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행동도 달라지는 곳이니 너무 집착해서 살 곳이 못됨을 알려주고 있다.

즉, 인간 세상에서의 삶은 늘 인심의 변화와 추이를 살피며 살아야 하는 피곤한 곳임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자연의 세계는 변덕과 배신이 없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곳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 여기서 김시습이 희구하는 인간 세계의 질서란 변덕없고 일관성있는 평화로운 세계, 꽃은 꽃대로 산은 산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스스로의 속성대로 자유로이 살아가는 자연과 같은 삶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http://mamstar.com.ne.kr/gamsang/dl/gam110.htm>